
Chapter 1. 숲에 들어가기 전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도착하기 전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인제 시내를 벗어나 차로 조금 더 들어가면, 풍경이 하나씩 정리되듯 바뀐다. 건물은 줄고, 나무가 늘고, 말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 순간부터 공기가 확실히 다르다. 차 안에 남아 있던 복잡한 생각이 문을 닫는 순간 같이 닫히는 느낌이 든다. 입구에서부터 숲까지는 완만하지만 분명한 오르막이다. 운동화는 필수고,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이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너무 쉽게 도착하지 않아서 좋다. 숨이 살짝 차오를 때쯤, 주변을 보게 된다. 흙길이 단단하게 다져져 있고, 나무 사이로 햇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진다. 누가 일부러 연출한 것 같지만, 사실 이 숲은 자연 그대로다.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시끄럽지도 않다. 다들 비슷한 속도로 걷고, 비슷한 표정이다. 말을 아끼는 분위기라서 혼자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여기서는 혼자인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가야 할 이유도 없고, 사진을 찍느라 서두를 필요도 없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소리다. 발밑에서 나는 흙 밟는 소리, 바람에 잎이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도시에서는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린다. 그 소리들이 묘하게 마음을 안정시킨다. 일부러 명상하지 않아도, 그냥 걷고 듣기만 해도 머리가 정리된다. 이 구간은 생각을 비우는 준비 단계인 것 같다. 아직 자작나무숲의 중심에 닿지도 않았는데, 이미 속도가 느려진다. 평소라면 휴대폰을 몇 번이나 꺼냈을 시간인데, 여기서는 그 생각조차 잘 나지 않는다. 굳이 꺼내지 않아도 충분히 보고, 느끼고 있어서다.
Chapter 2. 자작나무 숲 속
본격적으로 자작나무가 밀집된 구간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나무의 색이 다르다. 흰 줄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데, 그 자체로 정돈된 느낌을 준다. 누가 줄 맞춰 세워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하나도 똑같지 않다. 휘어진 것도 있고, 흉터가 있는 것도 있다. 그게 오히려 편안하다. 이 숲이 좋은 이유는 시야가 복잡하지 않다는 점이다. 색이 많지 않고, 구조가 단순하다. 그래서 눈이 쉬고, 생각도 같이 쉰다. 평소에는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정신없이 돌아가는데, 여기서는 하나씩만 떠오른다. 그것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냥 잠시 있다 사라진다. 길은 잘 정비되어 있어서 걷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지도 않다. 나무 데크와 흙길이 섞여 있고,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속도를 낼 이유가 없다. 앞사람과 간격이 벌어져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 숲에서는 각자 자기 리듬에 맞춰 걷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자작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시간대마다 다르다. 오전에는 차분하고, 오후에는 따뜻하다. 햇빛이 나무줄기에 부딪혀 반사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괜히 오래 서 있게 된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풍경이다. 실제로 보면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 혼자서 걷다 보면, 별거 아닌 생각들이 떠오른다. 요즘 왜 이렇게 피곤했는지, 무엇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는지.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무겁지 않다. 해결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아, 그랬구나” 하고 지나간다. 이 숲의 가장 큰 장점은 생각을 정리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여기서 오래 머무는지 알 것 같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데도, 그냥 계속 걷고 싶어진다. 벤치에 앉아 있어도 되고, 가만히 서서 나무를 바라보고 있어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찾는 게, 요즘엔 정말 귀하다.
Chapter 3. 숲을 나오면서
돌아 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와 느낌이 다르다. 풍경은 같은데, 보는 사람이 달라진 느낌이라고 할까?. 숲에 들어갈 때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바빴다면, 내려올 때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몸은 조금 피곤한데, 머리는 오히려 가볍다. 이게 이 숲의 효과인 것이다. 작은 풀들, 나무껍질의 무늬와 모양, 그늘의 깊이 등이 눈에 들어온다. 서두르지 않으니까 지나쳤던 것들이 다시 보인다. 도심 일상생활에서는 늘 하고있는 일의 끝을 보고, 다음 일을 걱정하느라 이런 여유가 없었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주차장에 가까워질수록 현실이 조금씩 느껴진다. 차 소리, 사람 목소리, 휴대폰 알림.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담스럽지 않다. 숲 안에서 충분히 휴식과 여유를 가져서인지,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된 느낌이다. 이곳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다. 사진 몇 장 찍고 끝낼 곳도 아니다. 시간을 누리는 방식 자체를 바꾸게 만든다. 그래서 혼자 오기 좋은 곳이다. 누군가의 페이스에 맞출 필요도 없고,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계절마다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계절이든 숲에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 같다. 조용하고, 단순하고, 솔직하다. 그게 이 숲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일 것이다.
결론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요란한 위로가 아닌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곳이다. 그래서 마음이 정신없을 때 말없이 다녀오기 가장 좋은 곳인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있기보다는 가만히 있어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되는 곳이다. 이곳을 떠나게 될 때 꼭 다시 오고 싶어 지는 곳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