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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겨울여행(재인폭포, 호로고루성지, 식사 여유)

by 여행 줌마 2026. 1. 23.

경기도 연천 재인폭포 전경

재인폭포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아름답다. 얼어붙은 폭포수, 적막한 숲, 절벽을 타고 흐르다 멈춘 물줄기. 북적이지 않아 좋고, 차갑지만 그래서 더 맑은 겨울의 공기 속에서 폭포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단순한 자연 명소가 아닌, 계절과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연천의 겨울 대표 풍경. 조용한 여행을 원한다면, 겨울의 재인폭포는 정답일지 모른다.

1. 연천 재인폭포 - 얼어붙은 물길

재인폭포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연천읍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주차장은 한산했고, 입구로 이어지는 숲길은 눈이 살짝 덮여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다. 걷는 동안 들리는 건 바람과 발소리뿐이었다. 폭포까지의 거리는 짧지만, 그 짧은 시간조차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고요함이었다. 나무들은 앙상했고,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회색빛이었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겨울 특유의 투명한 공기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폭포 앞에 섰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멈춰 있구나'였다. 18미터 높이의 현무암 절벽을 타고 떨어지던 물줄기는 대부분 얼어붙어 있었다. 완전히 멈춘 건 아니었다. 일부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그 흐름마저도 느렸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는 여름처럼 웅장하지 않았다. 대신 물방울이 얼음에 부딪히는 작은 소리, 바람이 절벽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얼어붙은 부분은 마치 하얀 커튼처럼 절벽을 덮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검은 현무암이 드러났다. 폭포수가 흐르는 부분과 멈춘 부분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시간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절벽 아래 웅덩이는 반쯤 얼어 있었다. 물 위에 떠 있는 얼음 조각들 사이로 검푸른 물이 보였다. 주변 바위에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고, 햇빛이 비치면 반짝였다. 폭포 주변 난간은 철제여서 차가운 바람에 손을 대면 금방 시렸다. 그래도 난간을 잡고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폭포를 바라보는 동안 다른 잡생각은 모두 사라졌다. 그저 차가운 공기와 얼어붙은 물줄기, 그리고 그 앞에 선 나만 존재했다. 주변 산책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었지만, 조심해서 걸어야 할 미끄러운 구간도 있었다. 미끄럽지 않게 등산화에 아이젠을 장착해서 걸을 때 확실히 나았다. 폭포를 중심으로 짧은 순환 코스가 있었는데, 천천히 걸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폭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폭포는 또 달랐다. 절벽의 형태가 더 선명하게 보였고, 얼어붙은 물줄기의 두께도 가늠할 수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실제로 보이는 것만큼 담기지는 않았다. 카메라는 차가운 공기, 바람 소리, 고요함을 담지 못했다. 그래서 나중엔 사진을 그만 찍고 그냥 보기로 했다. 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재인폭포를 겨울에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가 머무는 동안 두세 팀 정도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혼자 폭포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그게 좋았다. 여름이라면 아마 사람들로 북적였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은 달랐다. 추위를 감수하고 찾아온 사람들만 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적함은 여행의 질을 바꿨다. 서두르지 않아도 됐고,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내 속도로 걷고, 서고, 바라보면 그만이었다. 겨울의 재인폭포는 그런 여행을 허락하는 곳이었다.

2. 연천 호로고루성지와 임진강 생태탐방로

재인폭포만 보고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연천은 생각보다 볼만한 곳이 많았다. 특히 겨울에 더 매력적인 장소들이 있었다. 폭포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호로고루성지를 먼저 찾았다. 고구려 유적지답게 규모가 제법 컸다. 토성 위에 올라서니 사방이 탁 트였다. 임진강이 굽이치며 흐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겨울 평야는 황량했지만, 그 황량함이 주는 깊이가 있었다. 토성을 따라 걷는 동안 바람이 거셌다. 귀가 시렸지만, 계속 걸었다. 성벽 곳곳에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렸다. 멀리 북한 땅이 보였다. 경계선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기가 접경지역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났다. 호로고루에서 나와 임진강 생태탐방로로 향했다. 이곳은 비무장지대 인근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탐방로 입구에는 안내판이 있었고, 겨울철 철새 관찰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실제로 걷다 보니 강 위에 떠 있는 새들이 보였다.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탐방로는 강을 따라 이어졌고, 중간중간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었다. 앉아서 강을 바라봤다. 물은 흐렸고, 하늘은 회색이었지만, 어딘가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간의 여유였다. 탐방로를 걷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겨울이라 더 한산한 것 같았다. 그 덕분에 오롯이 자연 속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백학저수지는 재인폭포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위치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호숫가는 바람이 약했다. 저수지 표면은 완전히 얼지 않았지만, 가장자리는 얼음이 얇게 덮여 있었다. 물 위에 비친 하늘과 산의 모습이 거울처럼 선명했다. 저수지 둘레길을 걷는 동안 발소리만 들렸다.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거의 없었다. 그 정적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데 30분쯤 걸렸다. 중간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 온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고대산 둘레길은 재인폭포와 가까운 편이었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웠다. 경사가 완만해서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숲길은 고요했고,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뜻했다. 눈이 쌓인 길을 걸으며 발자국을 남겼다. 뒤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선명했다. 중간에 전망대가 있었는데, 올라가 보니 연천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겨울 풍경은 단조로웠지만, 그 단조로움이 주는 명료함이 있었다. 더 이상 걷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가 흔들렸고, 그 소리가 숲 전체에 퍼졌다. 둘레길을 다 걷는 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체력 소모는 크지 않았지만, 머리는 확실히 맑아진 기분이었다.

3. 겨울 따뜻한 식사와 차 한잔의 여유

재인폭포를 다녀온 후 가장 필요했던 건 따뜻한 국물이었다. 연천읍으로 돌아와 한우국밥집을 찾았다. 간판은 낡았지만,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빈자리를 찾아 앉았고, 메뉴는 고민 없이 국밥으로 정했다. 바로 나온 국밥은 국물 색깔부터 남다르게 진했다. 뽀얗게 우러난 육수에 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 첫 숟가락을 뜨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뜨거운 고기국물을 한 입 떠서 입에 넣었다. 국물은 오래 끓였는지 깊은 맛이 느껴졌다. 고기는 쫄깃했고, 간은 적당했다. 밥을 말아서 먹었다. 몸이 금방 따뜻해졌다. 밖에서 한참 걸어 다녔던 탓에 손발이 차가웠는데, 국밥 한 그릇으로 온몸이 따뜻해졌다. 김치와 깍두기도 맛있었다. 특히 깍두기는 아삭했고, 국물과 잘 어울렸다. 식사를 마치고 폐교 북카페 '느린시간'으로 향했다. 연천읍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오래된 학교 건물을 개조한 카페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들어서니, 교실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복도가 길었고, 벽에는 옛날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카페 내부는 넓었다. 책이 가득한 서가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고, 창가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 운동장이 보였다. 운동장은 눈이 살짝 덮여 있었다. 카페는 조용했다. 손님이 몇 명 있었지만, 모두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책을 한 권 빌려서 읽었다. 시집이었다. 짧은 시들을 천천히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카페 안은 따뜻했고, 밖은 추웠다. 그 온도 차이가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폭포 입구에 작은 매점이 있었지만, 겨울이라 문을 닫은 상태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간식을 챙겨 갔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연천을 여행할 때는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자차가 확실히 편했다. 각 지점 간 거리가 제법 있었고, 버스 시간도 맞추기 어려웠다. 하지만 차가 있다면 하루에 여러 곳을 돌아보는 데 무리가 없었다. 겨울 연천 여행은 여유롭게 계획하는 게 좋았다. 한두 곳을 깊이 보는 것도 괜찮고, 여러 곳을 가볍게 훑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며

재인폭포의 18미터 높이 현무암 절벽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고 했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물줄기로, 여름에는 쏟아지는 폭포수로. 하지만 내가 본 겨울의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 고요함 때문이었다.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흐르는 물, 차갑지만 그래서 더 선명한 공기. 다음에 다시 간다면, 아마 봄이나 가을을 택할 것 같다. 얼음이 녹아내리는 봄의 재인폭포는 어떤 소리를 낼까. 단풍이 물든 가을의 절벽은 또 어떤 빛깔일까. 같은 장소지만 다른 시간, 다른 온도 속에서 만나는 풍경은 분명 새로울 것이다. 재인폭포는 그런 기대를 품게 만드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