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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겨울여행(분천 산타마을, 분천역, 청량산)

by 여행 줌마 2026. 1. 20.

경북 봉화 분천 산타마을 전경

한겨울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철길 위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이곳은 바로 경상북도 봉화군의 분천 산타마을, 매년 겨울, 단 2개월 동안만 문을 여는 마을로, 눈 덮인 기차역과 아기자기한 산타 장식들이 어우러져 한국 속 북유럽이라 불린다. 이 마을의 또 다른 오랜 세월을 견뎌온 간이역의 정취, 인근 청량산의 능선, 그리고 깊은 산골 마을 특유의 정겨움이 여행객들에게 따뜻한 겨울여행을 선사한다.

1. 꿈이 머무는 곳 – 분천 산타마을

새벽 일찍 출발한 기차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설경을 보며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분천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분천역에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빨간 지붕의 산타 집과 반짝이는 전구들을 보는 순간, 정말로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해발 650m 산골 마을에 자리한 이 작은 간이역이 이렇게 이국적인 멋스러운 곳으로 변신할 줄은 몰랐다. 원래는 폐역 직전까지 갔었다가 2014년부터 산타마을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겨울철 2개월만 운영된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곳곳이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역 광장의 대형 산타 인형 앞에서 사진도 찍고, 트리 장식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마을을 걸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기차 객차를 개조한 작은 카페였다. 찬바람에 꽁꽁 얼어서 들어갔는데,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정말 꿀맛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눈 쌓인 풍경을 보며 앉아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루에 몇 번 안 서는 열차를 기다리는 것조차 여유롭게 느껴졌다. 밤에는 조명이 켜진다고 하던데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본 게 아쉬웠다. 다음번엔 꼭 하루 묵으면서 야경까지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아이들 발자국이 눈 위에 찍혀 있었고, 장작을 패시는 어르신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관광지라기보다는 정말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 소박한 일상 속에 산타 장식이 어우러진 모습이 묘하게 따뜻했다. 분천역을 떠나면서 뒤돌아보니, 저 작은 역이 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분천역 트레킹 코스와 봉성면의 겨울 풍경

분천 산타마을 구경을 마치고 역 뒤편으로 난 트레킹 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분천에서 양원까지 이어지는 9km 정도의 길인데, 겨울에도 눈만 조심하면 충분히 걸을 만했다. 철로를 따라 이어지는 길이라 표지판도 잘 되어 있고, 중간중간 벤치도 있어서 쉬엄쉬엄 걸을 수 있었다. 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정말 사람 손 안 탄 자연이 펼쳐졌다. 강물 소리가 맑게 들리고, 눈 쌓인 낙엽송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함 속에서 혼자 걷다 보니,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중간에 있는 정자에서는 다른 여행자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쉬고 있었다. 모두가 이 조용한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길 끝에 도착한 양원역도 분천역만큼이나 아담하고 예뻤다. 여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봉성면 쪽으로 돌아가는데, 창밖 풍경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굴뚝에서 하얗게 연기 나는 한옥들, 눈 쌓인 논밭, 그리고 그 안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다큐멘터리 한 장면 같았다. 특별한 관광 명소는 아니지만, 그냥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상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 지쳐 있던 나에게, 이 조용하고 느린 풍경은 큰 위로가 되었다. 모든 게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3. 청량산 도립공원에서의 겨울산행

여행 2일째, 분천역에서 차로 20분쯤 달려 청량산 도립공원에 도착했다. 겨울 산은 추울 것 같아서 사실 고민했는데, 막상 와보니 이름처럼 정말 맑고 깨끗한 느낌이었다. 눈 덮인 바위 절벽과 능선을 보니 마치 수묵화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870m 높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겨울에도 오르기 괜찮았다. 입석에서 시작해서 청량사, 하늘다리, 자소봉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선택했다. 중간에 만난 청량사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오래된 절인데, 눈 내린 날 보니 정말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신비로웠다. 절 마당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고 조용했다. 바람소리마저 부드럽게 들렸다. 정상인 자소봉까지 가는 길은 좀 힘들었지만, 올라가서 본 풍경은 정말 장난 아니었다. 발아래로 분천 마을이 보이고, 멀리 태백산맥 능선들이 하얗게 펼쳐져 있었다. 땀 흘려 오른 보람이 확실히 있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인사를 건네고 길을 양보해 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었다. 하산해서 입구 근처 식당에서 따끈한 모주 한잔에 허기를 달래줄 산채비빔밥을 먹었는데, 차가운 바람에 얼었던 몸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청량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라, 겨울을 제대로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곳이다. 힘들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을 주는 산이었다.

여행을 마치며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한참 창밖을 바라봤다. 인스타에 올릴 만한 화려한 사진을 건진 건 아니다. 가성비를 따지자면 애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천과 봉화에서 보낸 시간은 분명 내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눈이 꼭 와야만 겨울인 건 아니지만, 그 마을에서는 눈이 있어야 완성되는 풍경이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멈춰 설 용기가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벌써 그곳이 그리워졌다. 그 마을은 다시 겨울이 와야만 문을 열겠지만, 내 마음속에 남은 풍경은 사계절 내내 빛날 것 같다. 언젠가 다시 꼭, 눈 내리는 분천역 광장에서 산타를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