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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 변산 마실길 3코스, 전나무 숲길, 7코스

by 여행 줌마 2026. 2. 14.

전북 부안 마실길 전경

서해의 절벽과 전나무 향, 그리고 염전의 하얀 결정이 하루 안에 펼쳐지는 부안 변산반도. 적벽강 노을길 3코스에서 시작해 내소사 숲길로 호흡을 바꾸고 곰소 소금밭길 7코스로 마무리하는 완벽한 동선을 직접 걸으며 확인했다. 9시간의 걷기가 어떻게 평생 기억에 남는 풍경으로 각인되는지, 그 생생한 기록을 지금부터 글로 남기고자 한다.

1. 적벽강 노을길 3코스 

아침 9시, 격포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변산 마실길 3코스의 시작점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이 길을 3시간 안에 걸을 수 있을까'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했고, 그게 정답이었다. 적벽강과 채석강으로 이어지는 이 9.8km 구간은 걷기보다 멈춤이 많은 길이었고, 계획했던 시간보다 40분을 더 썼지만 단 한순간도 아깝지 않았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하자마자 오른쪽으로 펼쳐진 수평선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왼쪽으로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졌다. 파도가 절벽을 때릴 때마다 하얀 물보라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고,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려다 보니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졌다. 채석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출발한 지 1시간 반이 지나 있었지만, 체감상으로는 30분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층층이 쌓인 퇴적암층이 마치 거대한 책장처럼 펼쳐진 모습은 사진으로 본 것과 완전히 달랐다. 직접 그 앞에 서니 지질학적 시간의 무게가 몸으로 느껴졌고, 수억 년 전 바다 밑에서 쌓인 퇴적물이 융기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이야기야 사실로 다가왔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해식동굴 쪽으로 이동했는데, 썰물 때라 바위 사이로 걸을 수 있는 길이 드러나 있었다. 발밑의 바위는 파도에 깎여 매끄러웠고, 곳곳에 고인 바닷물 웅덩이에는 작은 게 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적벽강 구간으로 넘어가면서 풍경은 또 한 번 변했다. 채석강이 수평적 층리의 미학이었다면, 적벽강은 수직적 절벽의 웅장 함이었다. 붉은빛이 도는 암벽이 30미터 높이로 솟아올라 있었고, 그 틈새로 자라는 해송들이 절벽에 생명력을 더했다.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갈매기 울음소리가 삼중주를 이루는 가운데 천천히 걸었다. 특히 절벽을 사선으로 바라보며 촬영한 사진들은 층리의 결이 그대로 살아나 지금도 가장 아끼는 장면들이 되었다. 격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구간은 백사장을 따라 걷는 평탄한 길이었지만, 3시간 넘게 해안 절벽과 함께한 뒤라 그 평온함이 새롭게 느껴졌다. 발에 밟히는 모래의 부드러움과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가는 리듬이 지친 다리를 달래주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2. 내소사 전나무 숲길

격포항에서 해물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택시를 타고 내소사로 향했다. 30분 남짓한 이동시간 동안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해안의 거친 바람과 파도 소리가 사라지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점점 더 녹색으로 물들어갔다. 바다의 짠 기운 대신 흙과 나무의 촉촉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귀에 들리는 소리도 파도가 아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였다.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숲길로 들어서는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600미터라는 짧은 거리지만 그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전나무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었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숲길바닥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 밟는 소리가 부스럭거렸고, 그 소리조차 숲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외변산의 적벽강이 '풍경의 웅성거림'이었다면, 이곳 내소사는 정확히 '고요의 정적'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천천히 걸었고, 누구도 크게 말하지 않았다. 숲이 만들어낸 침묵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목소리를 낮추게 만들었고, 나 역시 걸으면서 말보다는 듣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전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내 발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다. 천왕문에 도착했을 때쯤 시계를 보니 20분밖에 걷지 않았는데, 체감상으로는 훨씬 긴 시간을 숲 속에 있었던 것 같았다. 대웅보전까지 올라가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았는데, 고즈넉한 사찰 건축물들과 마당에 핀 꽃들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더욱 평화로워 보였다. 특히 대웅보전 처마 끝에서 바라본 변산의 능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모습은, 아침에 본 절벽의 날카로움과 대조를 이루며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내소사를 나서면서 든 생각은 '이 짧은 숲길이 없었다면 하루가 너무 일직선으로 흘렀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숲으로, 웅장함에서 정적으로, 수평선에서 수직의 나무들로 이어지는 이 전환이 하루 전체에 리듬을 만들어주었고, 오후에 남은 7코스를 걷기 위한 완벽한 재충전이 되었다.

3. 곰소 소금밭길 7코스 

오후 4시, 왕포마을에서 변산마실길 7코스를 시작했을 때 태양은 이미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햇빛의 각도가 낮아지면서 모든 풍경이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6.9km 구간이지만 대부분 평지였고, 아침의 해안 절벽이나 내소사 숲길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풍경이 펼쳐졌다. 논두렁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걷는데, 양옆으로 펼쳐진 논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그 사이로 난 좁은 길이 지평선을 향해 뻗어 있었다. 방조제 구간으로 접어들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서해 바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침에 본 적벽강의 역동적인 파도와는 달리, 이곳의 바다는 고요했고 잔잔했다.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물이 빠진 자리에는 수많은 게들이 집을 짓느라 분주했다. 방조제 위를 걸으며 바라본 석양은 정말 압권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태양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고, 하늘 전체가 주황색과 붉은색, 보라색으로 물들어갔다. 바다 위로 반사되는 햇빛이 반짝이는 길을 만들어냈고, 그 길 위로 갈매기들이 낮게 날아다녔다. 곰소항에 가까워질수록 염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얀 소금 결정이 쌓인 염전 구획들이 체스판처럼 정렬되어 있었고,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염전의 규모를 실감했다. 염전 너머로 보이는 석양과 소금밭의 하얀색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환상적이었고,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다 또다시 발걸음이 멈췄다. 곰소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고, 항구에는 하루 일을 마친 어선들이 돌아와 정박하고 있었다. 항구 주변의 작은 시장을 걸으며 젓갈 냄새와 생선 냄새가 섞인 공기를 들이마셨는데, 그것조차 이 길의 마지막 장면으로 완벽하게 어울렸다. 하루 동안 변산마실길 3코스와 7코스, 그리고 내소사를 모두 걸으며 느낀 것은 이 세 곳이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었다. 아침의 웅장한 절벽, 오후의 고요한 숲, 저녁의 평화로운 염전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졌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걷는 나 자신이었다.

마실길이 내게 남긴것 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백미러로 점점 멀어지는 변산반도를 바라보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9시간 넘게 걸었고, 만보기는 3만 보를 훌쩍 넘겼으며, 다리는 분명 지쳐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 더 걷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적벽강의 파도 소리가, 내소사 전나무 사이로 불던 바람이, 염전 위로 지던 노을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고, 그 풍경들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내 안에 깊이 새겨진 감각으로 남았다. 누군가는 적벽강의 절벽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내소사 숲길의 고요함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며, 또 누군가는 염전 위로 지는 석양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을 하루 안에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고, 그 경험이 당신의 걷기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라는 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