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울, 북적이는 관광지가 아닌 조용한 자연이 필요했다. 줄포자연생태공원의 겨울 갈대숲과 얼어붙은 습지, 곰소염전과 개암사 전나무길, 부안의 소박한 맛집과 따뜻한 숙소가 어우러진 완벽한 1박 2일이었다.
1. 줄포자연생태공원 – 겨울 갈대숲이 전하는 정적의 아름다움
부안군 줄포면에 자리한 줄포자연생태공원은 입장료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생태·교육 복합공간이다. 줄포만 갯벌과 인접한 습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곳은 잘 정비된 목재 데크길을 따라 겨울 갈대숲을 거닐기에 더없이 훌륭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귓가를 스치는 갈대 흔들림 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 물결,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겨울 하늘을 고스란히 담은 얕은 수면이 조화를 이루며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늦춰놓았다. 습지 탐방로에서 만난 백로와 물닭, 이름 모를 겨울 철새들이 제각각 생존을 위한 먹이활동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원 안에는 생태관과 곤충 전시관, 체험 공간이 함께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객에게도 적합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사색하며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나무로 제작된 전망데크에 올라서니 줄포만 갯벌이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데크 곳곳에는 쉼터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지치지 않고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갈대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면 작은 연못과 마주하게 되는데, 수면 위로 비치는 겨울 햇살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물가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저 바람 소리와 물결 소리만 귓가에 맴돌았다. 이런 순간이 진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태관 내부에는 줄포만 갯벌 생태계에 관한 전시물과 영상자료가 준비되어 있었고, 곤충 전시관에서는 다양한 표본과 살아있는 곤충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데만 두 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2. 곰소염전, 개암사, 줄포항 – 부안 조용한 명소들
줄포에서 차로 20분에서 30분 이내 거리에는 부안의 조용하고 매력적인 장소들이 숨어 있었다. 첫째 날 오후에는 곰소염전을 찾았다. 겨울 염전은 소금 채취가 끝난 뒤의 적막함 속에서 특유의 감성을 자아냈다.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하얀 염판 위로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고, 염전 옆에 있는 소금 박물관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소금을 만드는 과정을 간단히 관람할 수 있었다. 박물관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듣다 보니 평소 무심코 사용하던 소금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염전 한쪽에는 오래된 소금창고가 남아 있었는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건물이었다. 이튿날 오전에 향한 곳은 개암사였다. 고요한 산사 분위기에서 걷고 싶다면 빼놓을 수 없는 코스였다.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이어지는 전나무숲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개암사 고찰 특유의 단아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경내에서 내려다보는 부안의 들판과 산자락은 겨울에도 녹슬지 않은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풍경 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고, 그 소리가 마음속 잡념까지 씻어주는 듯했다. 스님 한 분이 지나가시며 조용히 미소 지어주셨다. 이튿날 오후에는 부안영상테마파크를 들렀다. 사극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관광객이 많지 않아 한적하게 둘러보기 좋았다. 텅 빈 골목길, 기와지붕 아래 떨어진 낙엽들, 그 속에서 사진 몇 장 남기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거리를 재현해 놓은 세트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곳곳에서 드라마 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한복 대여 서비스도 있어 분위기를 더욱 살릴 수 있었지만 추운 날씨로 나는 대여하지 않았다. 가까이 있는 줄포항은 작은 어촌 마을이지만, 파도 소리와 겨울바람을 마주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조용했고, 모래사장과 소박한 방파제가 정겨웠다. 항구 주변에는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너머로 섬 하나가 희미하게 보였다. 바닷바람이 차가웠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항구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3. 줄포 맛집과 숙소 – 겨울 입맛을 채우고 편히 쉬다
줄포자연생태공원 주변은 소박하고 정감 있는 식당들이 많았다. 줄포횟집은 이 지역 어민이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제철 생선으로 만든 회와 매운탕이 깔끔한 맛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방어회와 우럭탕을 많이 추천하는데 방어회는 기름기가 적당히 올라 입안에서 살살 녹았고, 우럭탕은 국물이 진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았다. 밑반찬으로 나온 젓갈류와 나물들도 하나같이 정성스러웠다. 사장님께서 직접 갯벌에서 캔 조개로 만든 반찬이라며 설명해 주셨다. 줄포 읍내에는 순이네 간장게장도 있는데, 밥도둑 간장게장 정식과 함께 고등어조림, 양념게장 등을 푸짐하게 차려주었다. 가격 대비 반찬 구성이 훌륭했고, 지역 주민도 자주 찾는 숨은 맛집이었다. 간장게장은 달지 않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밥 한 공기로는 부족해서 추가로 주문했다. 고등어조림은 비린내 하나 없이 깔끔했고, 양념게장은 매콤 달콤한 맛이 중독성 있었다. 조금 더 이동해서 곰소 젓갈시장 근처에서 젓갈백반을 즐겨도 좋았다. 젓갈 정식을 파는 노포식당들이 있어 지역색 강한 음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시장 안을 둘러보니 온갖 종류의 젓갈이 진열되어 있었다. 새우젓, 멸치젓, 갈치속젓, 명란젓 등 평소에는 보기 힘든 젓갈들도 많았다. 시식도 가능해서 여러 가지 젓갈을 맛보았다. 나는 평소 좋아하던 명란젓 등 젓갈 몇 가지를 구입했다. 숙소는 줄포 자연생태공원 내 숙박동을 예약했다. 공원 내 숙박동은 깨끗하고 한적하며, 자연 뷰가 매력이었다. 객실 창문 너머로 겨울 갈대숲이 보였고, 밤이 되면 별빛이 창가에 내려앉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편히 쉬기 좋아 여행의 피로를 제대로 풀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니 달빛에 비친 갈대밭이 환상적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고요함이었다. 만약 공원 내 숙소 예약이 어렵다면, 부안 읍내의 펜션이나 소형 호텔도 거리상 부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로를 다시 걸었다. 새벽 공기가 상쾌했고,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더욱 좋았다. 갈대밭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쳤고, 이슬이 맺힌 풀잎들이 반짝였다.
여행을 마치며
부안 줄포자연생태공원의 겨울 갈대숲과 습지는 말없이 나를 위로하는 듯 했고, 줄포만과 갯벌은 계절의 고요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숙소 창가에서 바라본 겨울 새벽의 풍경, 공원 한복판에서 마신 따뜻한 차 한 잔, 그리고 갈대 사이로 불어온 바람까지 모두 기억에 남는다. 빠르게 소비되는 관광지가 아닌, 천천히 머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겨울에 뭐 볼 게 있느냐고. 하지만 나는 이제 확신한다. 겨울이야말로 줄포를 방문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앙상한 갈대가 만들어내는 그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전해주는 생생한 자연의 감촉,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물결 소리가 주는 평온함. 이 모든 것이 겨울 줄포만의 특권이었다. 당신도 진짜 쉼이 필요하다면, 줄포자연생태공원으로 떠나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