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찾은 완주 계곡은 천연 냉장고였다. 운일암·반일암의 차가운 계곡물과 절벽 그늘, 위봉산성의 숲길, 완주의 로컬푸드인 한우육회비빔밥과 된장찌개로 채운 여름 밥상이 완벽한 하루를 만들었다.
1. 운일암·반일암
완주군 동상면에 위치한 운일암·반일암 계곡은 여름이면 빼놓을 수 없는 숨은 피서지였다. 입구부터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양옆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감싸며 깊은 숲으로 이어졌다. 도로를 따라 계곡과 평행하게 이어진 드라이브 코스를 지나니, 본격적으로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와 만났다. 운일암은 구름이 쉬어가는 바위, 반일암은 햇빛이 반나절밖에 들지 않는 암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 그대로 여름에도 햇볕이 깊숙이 들지 않아 늘 서늘한 그늘이 형성되어 있었고,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시원한 계곡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열기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계곡 가장 깊은 곳에는 용소라 불리는 연못이 있는데, 이곳은 깊고 투명해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게 만들었다. 발을 담그고 오래 앉아 있어도 물은 차갑기만 했고, 눈앞에는 하늘을 향해 솟은 절벽이 장관을 이뤘다. 나무 그늘 아래 여기저기에서는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고, 아이들이 바위 위에서 뛰어놀고 물장구를 치는 모습은 너무나도 정겨웠다. 다리 밑과 바위 밑은 특히 서늘했고, 물소리가 하루 종일 귓가를 채웠다. 계곡 주변에는 평평한 바위들이 많아 앉아서 쉬기에도 좋았다.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있으니 도시의 열기가 완전히 가신 듯했다.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아이들이 그 물고기들을 쫓아다니며 즐거워했다. 반일암 탐방로를 따라 위쪽 계곡으로 올랐다. 더 깊은 계곡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도 볼 수 있었다. 탐방로는 잘 정비되어 있어 걷기 어렵지 않았지만, 경사가 있는 구간도 있어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았다. 주변 숲은 짙은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참을 그 풍경에 빠져 있다가 내려왔다.
2. 위봉산성과 위봉사
계곡에서 시원하게 시간을 보낸 뒤에는 차를 타고 15분 거리의 위봉산성으로 향했다. 완주 9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산성은 해발 600m가 넘는 위봉산 자락에 자리해 있으며, 삼국시대 백제의 흔적이 담긴 유서 깊은 유적이었다. 산성 입구까지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차에서 내려 돌계단을 따라 오르는 짧은 오르막이 이어졌다. 여름엔 덥지 않냐고 묻겠지만, 숲이 짙게 드리워져 오히려 햇살이 차단되고, 그늘 속을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동상면 일대와 구불구불한 산길은 경쾌한 여운을 남겼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옛 조상들이 어떻게 이런 곳에 돌을 쌓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성벽 사이사이로 보이는 풍경도 일품이었다. 산성 아래에는 조용한 사찰 위봉사도 있어 함께 둘러보았다. 아담한 규모였지만 단청이 선명하고, 절벽에 위치해 조망이 좋았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산세가 웅장했고, 절 마당 한쪽에는 오래된 석탑이 서 있었다. 비구니 한 분이 마당을 쓸고 계셨고, 조용히 인사를 나눴다. 위봉폭포까지 짧은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 그곳도 찾아갔다. 여름이면 계곡수가 낙수처럼 떨어져 한기가 감돌았다. 폭포 주변은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폭포 앞에 서니 물방울이 얼굴에 튀어 시원했고, 폭포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또 다른 여유를 찾고 싶다면 인근 동상 숲 속 야영장이나 생태체험 숲길도 좋았다. 곳곳에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이 이어져 있었다. 계곡에서 몸을 식히고, 숲길에서 마음을 식히는 조합은 완주 여행의 백미였다. 숲길을 걷는 동안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렸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아름다웠고, 숲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숲길 끝에는 작은 약수터가 있어 시원한 물을 마셨다. 약수는 차갑고 청량해서 몸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3. 완주의 로컬 밥상
숲길을 걷고 나니 허기가 밀여와 든든한 밥상이 절실해졌다. 운일암에서 차로 10분 거리, 동상면 시내 초입에 위치한 완주한우마을식당은 지역민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었다. 이름 그대로 한우구이가 대표 메뉴였지만, 여름엔 한우육회비빔밥과 소고기된장찌개 세트가 인기였다. 한우육회비빔밥은 새싹채소와 육회가 푸짐하게 올라가 있어 입안 가득 풍성했고,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 나와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살아 있었다. 완주에서 키운 콩과 지역 채소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며, 반찬 하나하나 정갈하고 손맛이 느껴졌다. 육회는 신선했고, 참기름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비빔밥에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으니 든든하면서도 개운했다. 밑반찬으로 나온 겉절이와 무나물도 맛있었다. 사장님께서 직접 재배한 채소라며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셨다. 좀 더 가볍게 즐기고 싶다면, 완주 시내 쪽으로 이동해 삼례시장 국수거리의 콩국수나 열무국수를 추천한다. 삼례역 근처에는 오래된 노포들이 줄지어 있어 한여름의 입맛을 살려주는 메뉴가 다양하다. 특히, 삼례원조국수는 고소한 콩국물에 직접 뽑은 면을 넣어 내는 콩국수로 인근 여행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콩국수는 진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면발이 아주 쫄깃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음이 동동 떠 있어 시원함이 배가 된다. 후식으로는 삼례읍 근처의 삼례문화예술촌 카페거리에 들렀다. 갤러리형 북카페와 감성 찻집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여유로운 마무리를 즐기기 제격이었다. 여행에서 돌아가는 길,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운일암의 물소리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은 여운이었다. 카페 내부는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고, 창밖으로는 예술촌 거리가 보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나온 쿠키도 맛있었다. 카페에서 책도 읽을 수 있어 한참을 머물렀다. 예술촌 거리를 걷다 보니 갤러리와 공방들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작은 공예품 가게에서 기념품도 하나 샀다.
여행을 마치며
운일암·반일암은 단순한 피서지로 유명하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과 절벽이 만든 그늘, 고요한 숲길과 역사 유적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은 여름에 꼭 한 번은 들러야 할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이었다. 짙은 녹음과 투명한 물길이 반겨주는 완주의 여름은 단지 더위를 피하는 수준을 넘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식혀주는 휴식처였다. 여기에 지역의 맛을 담은 식사와 한적한 카페, 그리고 천천히 걷는 숲길이 더해지며, 단 하루였지만 꽉 찬 여행이 완성됐다. 여름이 다가오고, 도시의 열기가 견디기 어려워질 때. 에어컨 대신 계곡 바람을, 짜여진 일정 대신 숲 속 걷기를 선택하고 싶다면, 완주 운일암·반일암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기를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