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에서 전북 임실군 운암면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던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면서 거대한 호수가 등장했다. 호수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옥정호 붕어섬 입구에 다다른다. 옥정호 붕어섬 출렁다리를 처음 본 순간의 압도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420m 길이의 보행교가 호수 한가운데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물 위를 걷는다는 것, 섬까지 건너간다는 것. 이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 옥정호 붕어섬
요산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출렁다리 입구로 향했다. 성인 4,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다리 위로 발을 내디뎠다. 폭 1.5m의 다리는 생각보다 좁았고, 바닥은 스틸 그레이팅 구조라 아래 물빛이 슬쩍슬쩍 보였다. 딱 그 정도의 아찔함. 겁을 주려는 게 아니라 몸이 반응하도록 설계된 느낌이었다. 처음엔 조금 긴장했지만 몇 걸음 걷다 보니 오히려 그 아찔함이 재미로 바뀌었다. 사람들과 비켜가며 걷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다. 높이 80m의 주탑은 붕어를 형상화한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로 끌렸고, 사진을 찍어도 잘 나왔다. 다리 중간쯤에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호수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고, 바람이 수면을 스치며 잔물결을 만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았다. 420m가 길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막상 걷다 보니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짧았다. 다리를 다 건너니 붕어섬 생태공원이 나타났다. 국사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붕어를 닮았다고 해서 붕어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래 이름은 '외앗날'이었다고 전해진다. 면적은 약 73,039㎡ 규모로,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임실군이 2018년에 매입해서 사계절 꽃등 다양한 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공원으로 재정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있었고, 곳곳에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섬을 한 바퀴 돌며 걸었다. 호수가 사방으로 보이는 풍경이 신기했다. 보통은 호수보다 높은 전망대에서 호수를 바라보게 되는데, 여기서는 호수 한가운데서 주변을 둘러보는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섬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단순히 풍경을 본 게 아니라 물 위를 직접 걸으며 호수를 통과했다는 경험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 장소를 '잘 만든 걷기 여행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반 공원은 걷다가 말지만, 여기는 건너가야 하는 목적이 생긴다. 420m의 직선이 사람을 몰입시키고, 섬에 닿는 순간 또 다른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진다.
2. 옥정호 주변 국사봉
붕어섬을 걸었다면 같은 호수를 다른 높이에서 한 번 더 봐야 한다. 그곳이 국사봉 전망대다. 다리 위에서 봤던 수면을 이번엔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새벽에 방문하면 물안개 짙은 붕어섬을 감상하기 좋다고 한다. 나는 낮에 갔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옥정호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호수의 전체 윤곽이 한눈에 들어왔고, 출렁다리가 호수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옥정호라는 공간 자체가 댐이 만든 호수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풍경이 달리 보였다. 섬진강 상류의 물을 댐으로 막아 조성된 호수로, 낙차를 이용한 발전과 용수 공급 등 다목적 기능을 가진 곳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호숫가에 서니 단순한 예쁜 물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거대한 물길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섬진강댐 물문학관도 들렀다. 섬진강댐의 역사와 옥정호의 비경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호수의 감성만 챙기고 끝내기 아쉬울 때 여기서 맥락을 채우면 하루가 단단해진다. 물은 원래 흐르는 존재인데, 그 흐름이 어떻게 모이고 어디로 보내지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니 풍경이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가 되었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운종리 작약꽃 축제이다. 5월 중순에서 6월 초 사이 3주 동안의 만개 시기에 방문하면 화려한 꽃밭을 볼 수 있다. 옥정호 푸른 물결과 어우러져 그 화려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3. 옥정호 주변 맛집
옥정호 붕어섬과 국사봉을 걷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호수 위 찬바람 맞으면서 몸은 많이 차가워진 상태로 따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민물매운탕 간판이 연달아 눈에 들어오는 순간, 오늘 메뉴는 이미 정해졌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뺨을 스치자 뜨거운 국물이 절실해졌고,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보이는 식당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추장, 들깨, 된장이 뒤섞인 칼칼하고 구수한 향이 확 밀려왔다. 자리에 앉아 민물매운탕을 주문하고 먼저 나온 반찬들을 살폈다. 김치는 지나치게 시지 않고 적당히 익어 있었고, 깍두기와 장아찌를 한 입씩 맛보며 국물을 기다렸다. 곧 민물매운탕이 담긴 냄비가 불판위에 놓였다. 미나리, 쑥갓, 대파, 양파가 푸짐하게 쌓여 있고 그 아래 민물고기가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젓지 않고 위에 뜬 채소만 살짝 눌러줬다. 이렇게 해야 살이 부서지지 않고 국물도 탁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첫 국물 한 숟갈을 떴다. 고추장의 진득한 칼칼함이 혀끝을 강하게 쳤고, 곧이어 된장과 채소에서 우러난 구수한 단맛이 뒤를 받쳐주며 깔끔하게 정리됐다. 비린내는 전혀 없었다. 손질이 제대로 된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민물 특유의 깊은 향만 남아, 오히려 풍미로 작동했다. 감자와 수제비를 추가했다. 감자는 끓을수록 국물에 자연스러운 단맛과 농도를 더했고, 수제비는 국물을 씹는 재미로 바꿔 한 숟갈의 만족을 두 배로 늘렸다. 미나리는 끝까지 신선한 향을 밀어 올려 국물의 무게감을 가볍게 정돈해 줬다. 이 조합이 옥정호 민물매운탕의 진가였다. 밥은 서두르지 않았다. 국물이 충분히 졸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입씩 정확하게 떠먹었다. 매운맛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수준이었다. 마지막은 당연히 볶음밥이었다. 남은 양념을 바닥까지 긁어 밥을 볶아내자 고소함과 얼큰함을 한 번에 응축됐다. 오늘 식사의 정점이었다.
여행을 마치며
물 위를 직접 건너는 듯한 옥정호 붕어섬 출렁다리, 옥정호와 붕어섬의 다른 모습을 불 수 있는 국사봉 전망대, 이 모든 풍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는 섬진강댐 물문학관, 그리고 그 모든 여정의 끝에서 뜨끈한 민물탕 한 그릇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옥정호 붕어섬은 사진만 남기는 여행지가 아니라 사람 컨디션까지 회복시키는 여행지다. 걷고, 보고, 느끼고, 먹고, 쉬는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곳. 다음에 또 종종 찾아볼 것이다.